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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를 찾아온 말씀은 "이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다.
주님의 사자를 통해 삼손은 태어나기도 전에 ‘나실 사람(나실인)’으로 구별된다. 나실인은 원래 일정 기간 자발적인 서약을 통해 포도주와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삭도를 대지 않으며, 제사장처럼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평신도 구별 제도였다. 그러나 제사장과 레위인마저 영적으로 타락하여 아무도 스스로 헌신하지 않던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은 태중의 아이를 일방적으로 지명하신다. 그것도 일정 기간이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평생이다. 인간의 결단이 바닥난 자리에서 하나님은 주권적인 부르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친히 시작하신다. 과연 삼손은 자신을 먼저 택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인가? 불평하며 억지로 살까? 거부하거나 무관심할까?
이 말씀 때문에 떠오른 나의 일상은 고등학생 시절 하나님 앞에 드렸던 서원이다. 당시에는 내가 주님을 믿기로 선택했고, 내 결단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깨닫는 진실은, 내가 결단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나를 택하시고 이끄셨다는 사실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된 부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지금 내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헌신은 여전히 미흡하고, 순종은 툴툴거리며 억지로 할 때가 많으며, 때로는 사명에 무관심하여 회피하려 든다.
어제 주일 점심 후에는 우리 교회 악기찬양팀 연습 모임에 처음으로 함께해 보았다. 성도들이 2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열심을 다했다. 내가 통기타를 다룰 줄 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지적을 쏟아놓았는데, 모임 전 나보고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던 교우들의 깊은 뜻(?)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통기타를 치는 두 분이 보면대가 없어 성경책 위에 위태롭게 악보를 올려놓고 치다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고,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보면대 2개를 주문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2시간 동안 훈수를 들으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열심으로 연습하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깊은 울림을 받았다. 교우들의 자발적인 결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먼저 그들의 마음에 찬양의 불씨를 지펴주셨기에 가능한 헌신이다. 나를 먼저 목회자로 부르시고, 성도들의 마음에 먼저 찬양의 소원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불평을 멈추고 더욱 겸손하고 오래도록 주님을 찬양하는 나실인으로 성숙해 갈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헌신이 메마른 시대에 삼손을 모태에서부터 택하셨듯이, 연약한 저를 창세전에 지명하여 목회자로 세워주시고 귀한 악기찬양팀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내게 부르심과 헌신의 마음을 부어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때때로 불평하고 회피하려 했던 미숙한 자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사오니, 나실인처럼 우리 삶과 예배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소서. 악기를 잡고 연습하는 성도들의 땀방울을 기쁘게 흠향하시고,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한 감사와 기쁨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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