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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3:15~25
  • 작성자 신정학
  • 조회수 3
2026-09-29 15:50:00

오늘 나를 찾아온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우리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오.” 이다.

본래 하나님은 영이시며, 초월적인 분이시기에, 인간이 그 본체를 직접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형태, 즉 사람의 모습(모세가 하나님의 등을 보았을 때), 불꽃(모세가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주님의 천사 등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자기에게 나타난 주님의 천사가 제단 불길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자, 주님 그 분이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을 어떤 모습으로 보게 될까? 신약 성경은 크게 5가지로 가르쳐준다. (1)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얼굴과 삶을 통해(요1:18), (2)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조명을 통해(고후3:17~18), (3)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통해(히4:12), (4) 서로 사랑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와 ‘보잘것없는 이웃’을 통해(요일4:12, 마25:40), (5)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완전히 보게 된다(고전13:12, 요일3:2).

이 중에서, 현재 우리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주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 예수님의 몸이자 성령님의 성전인 “교회”, 그리고 보잘것 없는 지극히 작은 “이웃”이다.

이 말씀 때문에 떠오른 나의 일상은 매일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주님의 얼굴들이다. 아침마다 성경을 펼칠 때 주님은 말씀의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계신다. 주일마다 성도들과 예배하고 식탁을 나눌 때 주님은 교우들의 따뜻한 눈빛 속에 임재해 계신다. 하루 중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이웃을 마주할 때 주님은 보잘것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내 곁을 조용히 지나가신다.

그러나 영적으로 둔감한 내 눈에는 주님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활자로 인쇄된 성경책이고, 매주 보는 익숙한 교우들이며, 길거리의 낯선 행인일 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내 굳은 마음에 말씀의 깨달음을 불어넣으실 때, 지체들을 향해 까닭 없는 사랑이 솟아나게 하실 때, 연약한 이웃을 보며 가슴 저린 긍휼을 품게 하실 때, 비로소 내 일상 한복판에 불꽃처럼 서 계신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가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때 나는 마노아처럼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에 깊은 경외감에 젖는다.

하나님 아버지, 묵상하는 지금, 마노아가 불꽃으로 주님을 보듯이, 제가 말씀으로 주님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노아가 경외심과 두려움을 느끼듯이, 제가 깨달음과 갈망을 느끼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활자로 지나칠 뻔한 성경 속에서, 그냥 익숙한 사람으로 여길 뻔한 성도들의 얼굴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뻔한 작은 이웃의 신음 속에서, 주님의 현존을 경외함으로 발견하도록 제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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